지인으로부터 대량으로(정말 대량으로) 양도받은 럼을 하나하나 마셔보기로 하였다.
술을 차근차근 맛보며 마시기 시작한 뒤로, 칵테일의 기주로 사용된 럼은 마셨어도 럼 단품을 마신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에, 맛과 향을 잘 즐길 수 있을지 걱정부터 되었으나, 어쩌겠는가, 집에 마셔야 할 럼이 19병이나 있는데. 이것도 인생의 좋은 공부다 하고 천천히 맛을 봐 갈 수밖에 없다.
먼저 고른 럼은, 쿠바산(産) 럼인 론 몬테크리스토(Ron MonteCristo) 12년. 국내 인터넷상에서는 검색해 보아도 전혀 그 정보가 등장하지 않았다.
일본쪽 인터넷을 뒤적여 보니, 양조 자체는 도미니카에서, 럼의 분류상으로는 쿠바 스타일 럼, 만들어진 럼의 보틀링은 스페인에서 했다고 되어 있다. 잘 모르겠지만, 굳이 바다를 건너 스페인까지 가져가 보틀링을 하는 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? 하는 업이 무역업이다 보니, 주세 등의 절세를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드나,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다.
글라스에 따라놓고 보니, 평소 마시는 위스키들보다 확실히 색이 진하다. 소위 말하는 소위 말하는 '다크 럼'의 색상이 이쪽 계통 색상이리라. 가볍게 흔들어 잔 벽에 술을 묻힌 뒤 흘러내리는 모습을 관찰해 본다. 녹진하게 흘러내리지는 않으나, 가볍지는 않지만 아주 얇게 전체적으로 묻어 내려온다. 필시 입 속에서의 느낌도 깔끔하겠지.
글라스에 코를 갖다 대자, 가벼운 알콜부즈가 느껴진다. 코를 찌르는 수준은 아니며, 향은 충분히 맡을 만 하다. 럼에 익숙하지 않아 숨은 향 등은 찾기 힘들었으나, 럼 특유의 달콤한 향이, 아세톤 등의 용제와도 비슷한 향과 함께 섞여 콧속으로 들어왔다. 일본에서는 "비파 향"으로 표현하던데, 상큼한 과실향과도 같은 향 역시 느껴진다.
가볍게 한 모금 입에 흘려 넣자, 이것이 사탕수수의 맛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는, 흑설탕과도 비슷한 달콤한 향이 혀 위를 타고 들어왔다. 혀를 휘감으며 아주 약한 스파이시한 느낌이 남고, 술 자체의 오일리함은 거의 없는 깔끔한 식감이다. 도수가 38도로 약간 낮은 것 때문인지 굉장히 마시기 쉽고, 향도 불쾌하거나 한 부분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.
흘려넣은 그 대로 자연스럽게 목으로 넘기자, 달콤쌉쌀한 여운이 입속에 잠깐 남았다 이내 사라진다. 럼의 달콤함을 가득 머금은 아로마만이 입 속에 남고, 술 맛 자체의 피니쉬는 아주 가볍고 짧다. 드라이한 술을 좋아하는 내게는 아주 맛있게 느껴진다.
약 45ml 정도를 따라 마셔 보았는데, 굉장히 가벼운, 마시기 쉽고 마일드한 술임에는 틀림없었으나, 복잡미묘한 향을 느끼기엔 내게는 역부족이었다. 아니면, 럼이라는 술 자체가 이런 특성인 것일까? 중간중간 크래커 조각으로 입 속을 리셋시키고 나서 마셔 보아도 다양한 향을 구분해 내기는 힘들었다.
증류주 초심자인 나로서는, 현재의 수준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라 느껴졌다. 아직 남아 있는 다른 여러 럼을 더 마셔 보고 나서, 다시 처음부터 한 바퀴 다시 돌아본다면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. 이번 술도 좋은 공부가 된 술이었다.
- 주류명 : 론 몬테크리스토 12년 (Ron MonteCristo 12 Años)
- 종류 : 럼 (쿠반 럼)
- 알콜도수 : 38도
- 구입가격 : 무상양수 (2020년 10월 현재 인터넷 판매가 약 5400엔)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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